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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독일] 비타민 B를 먹어야해요

2019년 11월 12일 만하임에서
편집위원: 신나희

 

공채 시즌이다. 학업을 마쳤으니 이제 일을 찾아서 나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할 때. 그러나 독일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특히나 독일어가 유창하지 않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특정 기술이 없다는 점에서 나 같은 잠재 외국인 노동자는 사실 독일 노동시장에서 찬밥 신세(?)다. 비록 약간의 찬밥신세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글을 통해서는 지난 3~4개월간 구직활동을 통해 외부인의 시선에서 경험했던 독일에서의 취업 시장에 대한 인상을 공유 할 수 있을 것 같다.

 


[Figure 1] 베를린 채용박람회 (Jobmesse, November 2-3)

 

 

노동시장과 밀착된 교육제도 : 직업교육 (Ausbildung)
자랑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내놓으라 하는 학력과 실제적인 프로젝트 매니징 업무 경험까지 있는 내가 독일 취업시장에서 고전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나치게 학력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가진 학위들은 이윤창출에는 전혀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학위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렇다. 물론 기업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미 기업이 요구하는 다양한 직무에 특화된 직업교육 및 중등/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당연히 정치학을 공부한 학생, 특히나 독일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 학생은 뒷전일 수밖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직무에 특화된 인재들이 길러지는 것일까?
독일의 교육시스템은 이미 매체에서도 여러 번 다루어질 정도로 ‘사회의 노동수요’와 밀착된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내가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번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보니 정말 그러했다. 이는 다시 말해 초/중/고등 교육과정 자체가 특정 직업에 걸맞은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독일의 교육과정을 간단하게 도식화해서 나타낸 아래 그림을 보자. 독일에서는 엘리트식 교육을 지양하고 모든 계층에게 동일한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초등교육 (primary schools, grade 1-4) 이후 만 10세가 되는 아이들이 중등교육 과정(secondary schools)에 진입하면서 교육과정이 완전하게 다른  세 가지 트랙으로 나뉘어진다1.


• 트랙 1: 김나지움 (Gymnasium, grade 5-12): 소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일반적으로는 대학교 (Universität, Hochschule)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한다. 입시의 경쟁 정도는 다르겠지만 김나지움 졸업시험(Abitur)을 위해 대한민국의 수능만큼 공부 해야 한다고 한다.
• 트랙 2: 레알슐레 (Realschule, grade 5-10): 성적이 나쁘지는 않지만 김나지움에 진학하기에는 점수가 모자른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보통 ‘화이트칼라’ 직군에 포함되는 포지션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 트랙 3: 하웁트슐레 (Hauptschule, grade 5-9): 세 가지 트랙 중 성적이 가장 낮은 학생들이나 혹은 특정 직업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보통 ‘블루칼라’라 표현되는 포지션으로 배치되는 직업 교육을 받는다.

 


[Figure 2] 독일의 교육시스템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이론적인 학문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가는 김나지움 학생들을 제외한 모두가 사실상 직업교육 과정에 진학한다고 보면 된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레알슐레나 하웁트슐레에 진학한 학생들은 중등교육의 첫 과정을 끝내고 두 번째 중등교육 과정으로서 직업학교(Berufschule)에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직업학교에서 이루어지는 3년가량의 직업교육 전체 과정을 독일어로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고 부르는데, 학교와 회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종종 Dual Studium 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엣, 학교와 회사에서 동시에 직업교육이 이루어진다고? 그렇다. 직업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들은 본인이 아우스빌둥 과정을 제공하는 회사에 지원을 해야 한다. 회사의 채용 과용을 통해서 고용되어야 그 사실을 바탕으로 3년간 아우스빌둥이라는 교육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독일의 학생들은 벌써 만 14살쯤에 본인의 직업상을 구체화하고 그에 부합하는 회사에 지원하고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우스빌둥의 경우 약 30%가량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며 관련 이론적 지식을 습득하고 나머지 70% 시간을 회사나 현장에서 현장경험을 쌓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정마다 이루어지는 방식이 다르지만 일주일에 1-2일 정도 학교에 가고 나머지를 회사나 작업장에서 실습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만약 회사와 학교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경우는 2~3달 간격을 두고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이론과 현장실습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는 당연히 급여를 받는다. 물론 정직원보다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회사를 통한 현장실습 기간이 길다고 해도 엄연히 ‘학교’이기 때문에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존재하고 졸업시험까지 있다. 내 주변에도 아우스빌둥 과정 중인 친구들이 꽤 있었다. 작년 학생 기숙사에서 같이 살았던 독일 친구 필립은 자동차 회사에서 엔지니어/프로그래머가 되는 아우스빌둥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회사가 만하임, 학교가 베를린이어서 꽤나 고생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재작년 목수 아우스빌둥을 끝낸 내 친구의 남동생은 20살이지만 벌써 4년 차 프로 목수다. 방을 구하면서 만났던 벨벳이라는 18살의 친구는 비서가 되는 아우스빌둥을 하면서 현재 치과에서 일한다. 이런 아우스빌둥은 경찰, 공무원, 은행, 제빵, 미용사 등 약 350종의 직업군을 포괄하는데, 하나의 직업군 내부에서도 세부분야가 다양하게 나눠어있다. 예를 들어 건설 직업학교의 경우 콘크리트, 토목, 도로 공사, 지붕 공, 타일공 등으로 나눠진다. 
 

이렇듯 독일에서는 어린 나이에 자신만의 업계, 직군을 결정하고 이론적인 지식은 물론 실질적인 현장 경험을 쌓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한 ‘기술’을 배우는 것에서 넘어서 ‘업계/직군’ 자체에 맞는 직업 교육이 어릴 적부터 수행되고 있으니 당연히 나같이 정치학, 보건학으로 가방 끈만 긴 사람은 ‘연구직’에 걸맞은 인재, 사기업보다는 ‘대학’ 혹은 ‘연구소’로 가야하는 인재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11월 초에 다녀온 베를린의 채용박람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의 채용박람회라면 양복을 빼입은 대졸자 혹은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기업의 인사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베를린에서 내가 본 것은 친구들과 혹은 부모님과 함께 온 15살 남짓해 보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박람회에는 약 100여 개의 기업 및 정부 기관이 함께 했는데 많은 수가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고 청소년 및 학생들의 진로 상담을 친절하게 해주고 있었다. 박람회 한켠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직군에 대한 설명, 그 업계에는 어떤 회사들이 분포해있는지, 원하는 경우 어떤 아우스빌둥 혹은 인턴(Praktikum)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 자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에 대비해야 하는지 등등을 가르쳐주는 강연 자리가 계속 이어졌다.



[Figure 3]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 강연 (베를린 채용박람회 중)

 

사실 개인적으로는 위와 같이 설계된 교육제도가 불공평해 보인다. 아무리 사회의 노동수요와 교육제도를 잘 연결 지어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있어서 소위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이런 과정을 통해 각 직업군에 맞는 준비된 인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뭔가 찜찜했다. 일단 학생들이 10살밖에 안 되었는데 대학에 가고 싶은지, 혹은 직업교육을 받고 싶은지 어떻게 알 것인가? 만약 직업교육이라면 어떤 직업? 인생 전체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결정들이 너무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10살 때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나보다. 1960년대 초반 독일 사민당은 세 가지 트랙으로 중등교육을 진행하는 기존의 전통적 교육제도에 반대하면서 조금 더 포괄적이고 대중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게잠트슐레(Gesamtschuele)다. 사실 학교라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 안에 위 세 가지 트랙을 함께 집어넣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 다양한 교육과정이 존재하는 것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원래 사민당의 계획은 게잠트슐레가 기존의 세 가지 트랙을 대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게잠트슐레에 대한 찬반 평가가 혼재되어서 이를 완전히 도입하기도, 그렇다고 제거할 수도 없게 되었고 (위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결국, 마치 나무에 곁가지가 돋은 마냥 기존의 제도에 엉성하게 추가된 형태로 남게 되었다.

뭐니뭐니 해도 결국은 인맥

 

독일에서는 취업을 하려면 ‘비타민 B를 먹어야 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기서 비타민 B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독일어의 ‘인맥(Beziehung)’이다. 조금 음성적인 의미에서 학벌과 지연이 한국에서 중요한 만큼 독일에서도 아는 사람의 인맥이 취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소위 ‘내가 그 사람을 아는데’ 혹은 ‘내가 그 사람이랑 일해봤는데’라는 현직자의 추천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인턴십을 통해 사내 인맥을 쌓는 데 열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인맥의 시작점이 되는 인턴십을 위해 부모님의 인맥을 이용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는 특히나 직업교육이나 현장실습 과정이 없었던 김나지움 출신 학생들, 즉 대학생들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위 ‘의무인턴십(Pflichtpraktium)’을 졸업 조건으로 두고 있고, 이를 통해 기업과 학생 모두가 서로에게 맞는 궁합을 찾고 인맥을 쌓는다. 기업은 비교적 싼 가격에 훌륭한 인재들을 알아보는 좋은 기회를 얻고 학생들 역시 적절한 임금을 받으며 향후 이 회사에서 혹은 이 직무에서 내가 장기적인 비전을 발견할 수 있을지 실질적인 진로 설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성적보다도 인턴십을 하면서 쌓는 인맥이 향후 취업에는 너무나 중요해서 학교 공부 자체보다도 인턴십에 더 열심히 인 학생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현재 나의 플랫메이트인 Laura 의 경우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회사인 SAP에서 학생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학사과정 마지막 논문을 쓰면서 회사를 다니느라 하루하루가 바쁘지만, 본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비록 인턴이지만)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면 이런 인턴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많은 인맥을 쌓아야 취업 시장에서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사실 독일 사회에서 인맥의 힘은 사기업 위주의 취업 시장은 물론이고 박사과정으로 나아가는 입시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박사과정의 경우는 특히나 교수 일인과 학생의 궁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입시 공고가 뜨기 전에 이미 내정자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학생으로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인 인턴십도 학생일 때나 가능한데, 요즘엔 독일에서도 취업 시장이 꽤나 어려워져서 졸업을 유예하며 인턴 경험을 최대한 많이 쌓는 것이 최고라고 한다. 나의 지인은 3년짜리 학사과정을 5년 이상 다니면서 인턴 경험을 쌓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친구는 이제까지 두세 군데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인맥을 쌓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인지상정이라고 누구든 같은 실력을 갖춘 후보자가 들어왔을 때 당연히 내가 좀 더 아는 사람, 내 지인이 추천해주는 후보자를 뽑기 쉽다. 현실이 이렇다면 당연히 실력을 기르는 동시에 인맥 관리에 열을 올리는 것이 현명한 생존전략이다. 내가 독일 학생이었어도 당연히 오랫동안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인턴십을 하면서 최대한 인맥을 쌓았을 것 같다. 물론 이런 방식도 독일 학생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일단 등록금이 없기 때문에 학기등록을 해서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데 재정적 부담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 신분을 유지해서 인턴십을 하는 경우는 법적으로 ‘의무인턴십’으로 구분되어 일정 금액 이상의 보수가 책정되기 때문에 생활비를 버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한 학기를 더 등록하고 내가 가고 싶었던 기관들에서 인턴십을 조금 더 길게 할 것을 하는 후회가 남는다.

 

지난 3~4개월간의 구직활동에서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에 끝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은 나의 희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렸을 적부터 도제 방식으로 길러져 온 인재들과의 경쟁, 그리고 인맥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취업 시장에서 내세울 기술도 없고 독일어를 하지도 못하는 외국인인 내가 어떤 식으로 독일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점점 더 이 사회를 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찾아오면 조금 쓸데없이, 그리고 어이없이 보람차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신분을 벗어나면서 강렬하게 찾아오는 현실의 울림이 무섭기도 하지만 말이다. 조금씩 익숙해지지만 여전히 낯선 독일 사회에 오늘도 한 발짝 내디딘다. 오늘의 교훈? 이제 와서 직업교육을 받을 수는 없으니 내가 가진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차라리 빨리 비타민B를 찾아 나서자!

 

 

 

                                                                                         

[1] 세 가지 트랙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학생의 ‘성적’ 이외에 다른 요소들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교사와 부모의 상담을 통해 최종결정이 내려진다. 물론 중간에 교육트랙을 바꾸는 것이 예전보다 조금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일단 하나의 트랙에 들어가면 변경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