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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생각하는 녹색전환]EU 플라스틱 빨대 금지화로 보는 생태 근대화의 함정

앞으로 유럽연합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금지될 전망이다. 유럽연합 의회는 지난 3월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 면봉, 빨대, 커피 스틱 등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란킨, 2019). 이 법안은 2021년까지 모든 유럽연합 가입국에서 시행될 예정이며, 추가로 가입국들은 2025년까지 생산되는 플라스틱병 성분의 25%를 재활용 물질을 포함하도록 하고 2029년까지 버려지는 플라스틱병의 90%를 재활용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아울러 의회는 지난 11월에 2050년까지 유럽연합 가입국에 한하여 한 해 배출되는 탄소량이 생산되는 재생 에너지보다 많지 않도록 규제하는 '기후 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최초로 강제성을 지닌 EU 차원의 기후 법령이 된다 (하비 & 란킨, 2019).


이에 복수의 환경 단체들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유럽연합이 목표한 바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슷한 일례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에 독일이 2022년까지 원자력 에너지 생산을 완전히 중지하고 이를 재생 에너지 생산으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오히려 석탄 소비량이 증가하는 부작용에 대처해야 했다 (부흐만 & 오엘스, 2019). 독일의 석탄 소비량은 2017년을 기점으로 소폭 하락했지만, 아직까지 당국은 전력 생산 원료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율을 크게 감소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칼럼은 유럽 연합의 발표에 대한 환경 단체들의 회의적인 반응을 ‘생태 근대화’ 비판론에 비추어 분석하고, 더 나아가 오늘날 국제 정치가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방향을 비판하고자 한다.

 


친환경 제품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태 근대화의 함정


현대 환경 정치 분야에서 생태 근대화 (ecological modernisation)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주류 접근법이다 (에윙, 2017). 생태 근대화의 기후 변화를 포함한 환경 문제를 생산의 환경 효율을 높이고 환경친화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크리스토프, 1996). 이는 녹색 자본주의(green capitalism)라고도 불리는 다소 낙관적인 관점인데, 생태 근대주의자들은 현대 사회의 기술 혁신이 자원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폐기물 처리에 드는 비용까지 절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태 근대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폐기물과 오염은 사회의 경제적 손실이다 (에윙, 2017; 드라이젝, 2005). 기술 혁신이 새로운 오염 정화 시장을 개척하여 폐기물과 환경오염이 일으키는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시장 경쟁력 또한 장려한다고 전망한다 (크리스토프, 1996). 즉, 이 관점을 지지하는 자들은 생태 근대화가 경제 활성화와 환경오염 해결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바시아고, 1994). 이것을 환경 효율과 경제 성장의 통합을 추구하는, 소위 '디커플링' (decoupling)이라 한다. 더불어, 환경 규제와 세금 부과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법 및 경제 기관의 역할을 강조한다 (스미스, 2004).


생태 근대화 특유의 기술 중심적이고 과학 기술의 전문성을 동반하는 엘리트주의적인 특성 때문에, 이 담론을 주도화하고 제도화하려고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정부, 기업체, 과학자 및 온건한 환경론자들이다 (드라이젝, 2005). 이들은 기존의 자유경제 시스템과 양립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주장하며, 심지어 일부 생태 근대주의자들은 오늘날의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을 작금의 생태적 효율이 낮아 침체된 세계 경제를 부양할 수 있는 투자 기회로까지 여기고 있다 (배리, 2007).


그러한 생태 근대주의자들을 기술적 낙관론자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생태 근대주의자들은 원래 생태적 한계를 부인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환경 정치학의 성장 개념에서 경제 성장을 분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드라이젝, 2005). 참고로 환경 정치학에서 다루는 성장의 개념은 경제 성장 뿐만 아니라 인구, 축적되는 환경 오염 물질 모두를 포괄한다. 생태 근대주의자들은 경제적 또는 생태적 한계는 단지 '맬서스의 악몽'1을 재현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계에 관해 논하는 것이 무효할 뿐만 아니라 그 전제에도 큰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시아고, 1994).


그러나 생태 근대주의자들의 낙관적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미 1972년에 로마 클럽 (Club of Rome)에서 발표한 ‘성장의 한계’ (The Limits to Growth) 보고서가 이들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바 있다. 당시 ‘성장의 한계’는 세계 탄소 경제가 촉발한 지구의 물리적 한계를 예측한 메도스 외 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로 제로 성장을 주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정책 방향이나 기술 혁신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시나리오부터 21세기 초에 최첨단 환경 정화 기술이 개발되는 보다 낙관적인 시나리오까지 다양한 가설을 시험했다. 먼저, 연구진들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는 인구, 산업 생산, 공해라는 세 가지 주요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2(메도스 외, 2004).  여기서 기하급수적 성장 (exponential growth)이라는 수학적 개념이 매우 중요한데, 연구진들이 시험한 모든 시나리오에서 화석 연료의 물리적 결핍으로 인해 앞으로 세계 경제는 장기적으로 침체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인구는 계속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메도스 외, 2004). 뜻밖에도 더 많은 화석 연료가 채굴되고 더 발전된 기술이 개발되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세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오염 때문에 여전히 생태적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된다. 폐기물과 환경오염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한, 아무리 고도화된 기술이 오염 물질을 정화,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오염 물질은 결국 기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초과하게 된다. 단적으로, 기술 혁신은 환경오염이 유발하는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을 지연시킬 뿐이다 (돕슨, 2000). 즉, 화석 연료와 플라스틱 빨대가 완전히 생산라인과 시장에서 방출되어도, 종이나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빨대가 일 년에 수천 톤씩 생산되고 소비된다면, 인류는 소위 '친환경' 빨대를 더 효율적으로, 더 적은 에너지로,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또다시 개발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칠 것이다. 이를 제본스의 역설 (Jevons paradox)이라 하는데, 효율 = 에너지 절감 = 환경오염 감소 공식이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이른다 (프레모, 2019). 결국 근본적으로 절대적 생산량과 소비량을 줄지 않는 한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을 저지하는 길이 요원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 낙관론자들은 기술 성장의 영향은 시뮬레이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미래 첨단 기술이 화석 연료 수요와 그에 따라 심화되는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바시아고, 1994). 그러나 오늘날 성장의 한계 연구진들의 예측이 상당히 정확했다고 인정받고 있듯이, 생산의 '락-인'현상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대로 라면 우리 사회는 환경오염을 정화하고 어떻게 든 화석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물론 생태 근대주의자들 중 누구도 새로운 화석 연료를 개발, 생산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을 내놓지 않았다.)끝없이 더 고차원적인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로렉 & 스판겐베르크, 2014). 이런 대처법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지구와 그 자원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생태 근대화는 오직 기술적 진보에 의존해 위기를 피상적으로 대처하려는 위험한 약속에 불과하다.


성장의 한계와 지속 가능한 에너지 기술 혁신의 허구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근래에 더 많이 발표되고 있는데, 일례로 윌리엄 반즈와 닐스 길먼이 오직 재생 에너지로만 전력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지구의 물리적 한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하는 실험을 했다 (2011 : 48). 우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매년 소비되는 전력은 약 13테라와트 쯤으로 추정되는데, 이 13테라와트의 전력을 모두 재생 에너지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건설에만 미국 국토와 동일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설령 더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어 더 적은 공간에 더 많은 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절대적 에너지 소비량이 감소하지 않는 한, 인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폐기물과 오염 배출량이 정화 기술의 한계치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3(돕슨, 2000) . 연구는 끝맺으며 재생 에너지 기술 개발과 관련 분야의 새로운 과학 지식 발견은 지구 온난화와 생태적 위기를 악화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즈 & 길먼, 2011).


추가적으로, 생태 근대화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해로울 수 있다. 기업과 시장이 계속해서 천연자원을 추출하여 경제 성장을 좇는 고루한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한편, 중앙 정부가 재생 에너지 기술 발전과 '친환경' 정책을 홍보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기후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선전을 하는데 너무나 편리하기 때문이다 (프레모, 2019). 플라스틱 폐기물이 해양 오염을 악화하고 바다 생물의 터전을 위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지구 온난화, 토양 오염, 물 부족, 식량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축산업이다. 축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환경오염 원인의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소 사육이 배출하는 탄소는 그 외 돼지, 닭, 염소, 오리 등 다른 축산업의 탄소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앤더슨 & 키건, 2014). 너무나 광활한 토지와 식수가 소를 먹이는 곡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데 낭비되고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여전히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식량난에 고통받는 이유로 지적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축산업은 항공 산업을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탄소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따라서 대규모 산업 축산, 공장식 축산업을 규제하지 않으면서 플라스틱을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하는 것은 기만이다.

 


분리수거 효율을 높이는 것보다 소비량 절대적 감축이 답


환경학자들의 경고는 한국의 재활용 대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017년 환경부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배출하는 폐기물은 약 340kg에 달하는 데 이중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의 비율은 33%에 불과하다 (한국환경공단, 2017).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33%라는 수치는 전 세계적으로 재활용률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는 환경오염을 대처하는데 필요한 절대적 재활용률 수치에 훨씬 못 미치며, 때문에 한국이 최근 필리핀 쓰레기 불법 덤핑, 비닐 대란, 의성군 쓰레기 산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은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도 이에 동의한다. 특히 종이 빨대 같은 소형 폐기물은 수거 업체들이 일일이 골라내어 재활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 대부분 소각된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황 소장의 설명이다 (정대희 & 유성호, 2019).


유럽연합이 독일의 딜레마를 그대로 따르지 않으려면 절대적 탄소 배기량 자체를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를 금지하더라도 종이나 옥수수 빨대, 일회용 종이 가방 소비량이 그만큼을 차지한다면 이 생태적 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1)  산업 혁명과 기술 발전 덕분에 당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해졌지만, 그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수 때문에 인류는 곧이어 필연적으로 식량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이론. 18세기 말 ~ 19세기 초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가 주장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 참조.
2) 연구진들은 2004년에 성장의 한계 개정판을 출간했다. 1972년에 예측한 2000년대 초반의 상황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3)  현재 전 세계 태양광 산업의 선두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한화큐셀의 연간 전력 생산량은 2016년 기준으로 6.8 기가와트에 불과하다. 반즈와 길번이 밝힌 연간 전력 소비량 13테라와트의 (13000기가와트) 수치는 적어도 2011년 이전 추정치이다 (최준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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