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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독일] 남 일 같지 않은 독일의 노인 빈곤

최근 흥미로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국에서 ‘올해의 한자성어’를 발표하며 한 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새로운 한 해를 기원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연말연시 시즌에 소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2019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단어 하나로 정리했던 곳은 바로 ‘독일어 협회(Gesellschaft fuer Deutsche Sprache)’로서 이곳은 1977년부터 그해에 새롭게 만들어진 신생어 중 그 해를 가장 잘 표현한 것 하나를 선정해왔다. 그렇다, 전통 느낌이 물씬한 사자성어 중에 올해의 단어를 고르는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그 해 새롭게 사전에 등재된 신생어들 중에서 그 해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를 골라내는 것이다. 독일어협회에 따르면 2019년 새롭게 탄생된 다양한 단어 중 한 해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는 바로 ‘Respektrente’라는 단어였다. 이를 직역하면 ‘존중연금’이라는 뜻이다. 존중연금이라… 이는 바로 평생을 일하고도 생계비 이하의 연금을 받고 있는 다수의 연금수령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현재 독일의 낮은 기초연금을 비꼬는 용어라고 한다. 아니, 독일은 나름 유럽의 복지국가로 불리던 곳이 아니었나? 그런데 낮은 연금으로 노인 빈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폐지 줍는 노인’에 놀란다면 나 역시 독일에 거주하면서 ‘재활용 빈 병을 찾으러 도시를 배회하는 노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긴 하다. 그리고 최근 독일에서 새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에게도 ‘연금’은 중요한 문제였다. 도대체 정확한 현실은 무엇일까? 떠오른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 몇 가지 간단한 사실을 정리해보았다. 일단 독일의 사회보장 시스템, 특히 연금과 관련된 체계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독일의 연금은 크게 세 가지 분류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와 비교될 수 있는 공적 연금(GRV: gesetzliche Rentenversicherung), 사기업의 공적 연금 플랜(bAV: betriebliche Altersvorsorge), 그리고 개인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연금(투자)상품이 바로 그것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의 약 85%가 공적 연금에 가입되어 있으며 근로자의 9%에 달하는 공무원들은 한국의 공무원 연금과 같은 별도의 연금, 그리고 나머지 약 9% 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경우는 공적 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대부분이 개별적으로 연금상품을 구매한다. 대다수의 근로자가 적용받는 독일의 공적연금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과 굉장히 비슷해서 이해하기 쉽다. 일단 사업장에 속한 근로자의 경우 공적 연금 가입이 의무사항이며 연금보험료는 근로자의 연봉에 따라 비례적으로 책정된다. 그리고 그 보험료를 사업자와 근로자가 절반씩 나눠서 낸다. 연금 수령시기와 그 시기가 최근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도 두 나라가 비슷하다.

 

한국의 경우 2012년(1952년생 이전)까지만 해도 만 60세에 노령연금을 받았으나 2013년 (1953년생부터) 부터 만 61세로, 2018년 (1957년생부터) 부터는 만 62세로 수급 연령이 늦춰졌다1. 독일의 경우 일반적으로 만 65세부터 연금수령이 가능하지만2 2029년까지 연금수령 시기를 만 67세로 늦춰지게 될 예정이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독일의 연금 체계가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한국에서는 연봉의 약 9%가 연금기금으로 간다면 독일은 약 2배인 18.6% (2019 기준) 으로 책정되어 있고 이는 2025년까지 약 20%로 증가될 예정이다.

 


Figure 1 세계의 노인빈곤율 (출처: statistia)

 

 

부자나라 가난한 국민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말 수치스럽다) 독일도 잔여적인 복지국가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 비슷하게 위치할 정도로 노인빈곤율이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 비해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고 기금도 더 튼튼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일의 연금체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거시경제의 차원에서 살펴보면 분명 독일은 유럽에서 경제 강국임이 틀림없다. 독일통일 이후 실업률 최저를 찍고 2017년 한 해만 26억 유로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몇 가지 기사들이 이야기하는 독일 연금수령자, 특히 여성 연금수령자의 현실은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을 보여주는 듯했다. 유럽연합의 조사에 의하면 월 800유로 이하의 연금을 받는 연금수령자들의 64%가 여성임이 밝혀졌고, 이는 동일 노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남녀 임금 격차와 가정에서 돌봄 노동을 주로 분담하는 쪽이 여자임을 고려했을 때 오는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기사에서 다루어진 두 가지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자3. 올해 67세의 사비나(가칭)는 월 800유로의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독일의 노인이다. 그녀는 평생 꽃가게를 운영했던 사람으로 작년 66세의 나이로 은퇴를 하면서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생 일했던 것에 비하면 그녀가 받는 연금 액수는 매달 지불해야 하는 집세 (460유로)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하고 나면 동이 난다. 식료품이 싸기로 유명한 독일이지만 치솟는 베를린의 물가를 사비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연금을 받기 시작한 순간부터 Berliner Tafel Soup Kitchen(무료급식소와 같은 곳)을 매일같이 오가고 있다. 그렇다면 자영업자로 살아왔던 사비나만 그런 것일까? 우체국 공무원으로 20년간 근무했던 마리아(가칭) 역시 마찬가지로 힘겨운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그녀의 경우 건강 문제로 최근 20년간은 일을 할 수가 없었고 5년 전에는 남편과 사별한 케이스다. 사비나와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월 840유로에 해당하는 연금을 받으면서 Berliner Tafel 로 매일 발걸음을 향한다. 벌써 10년째다. 사실 독일 내에서 무료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난민이나 장기 실업자다. 그러나 Berliner Tafel에 따르면 매일 찾아오는 약 5만 명의 사람들 중 약 30% (14만 5천 명)이 연금수령자, 특히 배우자가 없고 저임금 노동에 종사했던 여성 노인들이다.

 


Figure 2 재활용 빈 병을 찾는 여성 노인 (출처: www.dw.com)

 

 

기초연금의 도입


충분하지 못한 연금으로 노후생활이 넉넉지 않다는 것,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독일 연방정부가 가열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올해 11월,  그러니까 지난달, 독일 연방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기민당과 사민당은 몇 달간의 치열한 논의와 줄다리기 끝에 ‘기초연금(Grundrente)’안에 합의하게 되었다. 2021년부터 실행될 기초연금은 몇십 년간 공적 연금에 가입하고도 충분한 연금을 받지 못하는 수령자들에 대해 약간의 추가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물론 기민당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기초연금 수령을 원하는 사람들은 별도로 기초연금 수령을 신청하고 재정 상황에 대한 검증 절차 (means test)를 거쳐야 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약 140~150만 명이 기초연금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인데 그 중 약 80%가 여성 연금수령자일 것으로 예상된다4.

 

 

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다행히도 최근 독일의 한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나 역시도 노후에 대한 생각이 종종 든다. 회사에 고용된 근로자가 되면서 법적으로 공적 연금보험을 들게 되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독일에 있을지 모르는 상황, 외국인이라는 상황 등등으로 괜스레 내게 불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회사로 찾아와 개인이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는 연금(투자)상품을 홍보하는 상담원을 만나고 나자 그 옵션에도 귀가 솔깃해졌다. ‘근로’와 ‘가족’ 여부가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현재 한국과 독일의 공적 연금제도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는지도 미지수다.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서 일하기보다는 자유롭게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 생애주기에 변화가 많아서 단기로 여러 나라에서 거주하거나 혹은 전통적이고 근대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아, 여담이지만 최근 발견한 하나 흥미롭고 웃음 나오는 사실. 학교에서 TA로 일하면서 얼떨결에 가입하게 되었던 공적 연금 체계에 내가 ‘북한인’으로 등록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하하.

 

 

 

                                                                   

1) 퇴직 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애초 현행 법정 정년(60세)과 같게 60세로 설계됐다가 1998년 1차

   연금개혁 때 재정안정 차원에서 2013년부터 2033년까지 60세에서 5년마다 1세씩 늦춰져 최종적으로

   65세 부터 받도록 바뀌었다. (출처:링크 )
2) 만약 45년 이상 공적 연금에 가입해서 냈더라면 만 63세부터 수령이 가능하다.

    (출처:링크 ) 
3) 출처: 링크
4) 출처: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