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4월 12일 일요일. 지난달은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아 ‘코로나 대응 담당자’가 되는 바람에 매일 달라지는 상황에 대응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 했다. 매일 오전 9시에 있는 COVID-19 TF 브리핑을 시작으로 직원들 문의 응답과 위험지역을 다녀간 직원들의 동선 체크, 향후 비상 대비 플랜을 수립하는 것 등 정말 정신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렇다. 지난번 글을 기고했던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렸던 곳은 중국과 한국이었는데, 2월 말부터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1. 상황이 급반전되었기 때문일까? 몇 주 전부터는 한국의 지인들이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내가 아프지 않고 잘 지내는지, 도대체 유럽 상황이 정말 어떤지 물어봤고, 내 가족들은 차라리 한국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겠다며 잠깐 한국에 오는 건 어떻냐고 나에게 여러 차례 물어봤다.
유럽 상황이 도대체 어떻냐고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탈리아 상황을 전해 들으며 놀라셨으리라 생각한다. 하루에 몇 천명씩 확진자가 생기고 몇백 명 씩 죽어 나간다는 뉴스, 군인력을 동원해도 매일 쏟아져나오는 시체를 처리할 수가 없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다는 등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조차 없는 뉴스들이 한국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내게까지 전달되었다. 정작 나는 이탈리아와 가까운 독일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극적인 뉴스는 어떻게 한국에 전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탈리아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이렇게까지 사상자가 속출하는 것일까? 나 역시 이웃 나라 이탈리아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정말 침울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망자 대다수가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이라고 하지만 하루에도 몇백 명이 사망한다는 것을 떠올리면 공포감이 몰려온다. 독일에서 일하는 나의 이탈리아 친구들은 본국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자신들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집중력 결여와 우울감을 겪고 있다고 했다.
솔직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률을 생각해보면 유럽 내에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초기 진원지로 불린 중국과 한국의 케이스는 확진 케이스가 비교적 지리적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특정 지역을 완전히 봉쇄하고 무차별적으로 검사를 해대면서 그나마 어느 정도 빠르게 질병 확산을 막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유럽은 다르다. EU라는 체계 속에서 많은 시민들의 일상이 한 국가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만 해도 1/3 이상의 직원들이 비독일인이고 인접국에서 주말마다 통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주중이면 독일에 위치한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하며 회사를 다니지만 금요일 퇴근과 동시에 고속도로를 달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2월 말, 아직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유럽에 자리하기 이전, 마지막 스키 시즌을 맞아 많은 유럽 시민들이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로 휴가를 다녀오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 준비되지 않았던 유럽 각국의 보건의료 체계는 사망자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났고 그중 많은 수가 호흡곤란을 동반한 심각한 증세를 보였지만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물리적인 보건의료 체계가 턱없이 부족했다. 정말 전시상황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실제로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유럽의 의료인들은 제한된 벤틸레이터를 어떤 환자에게 사용할 것인가 – 즉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최소 부활절까지 외출 금지를 명합니다.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준 전시상황을 손 놓고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주요 국가에서는 3월 초부터 감염 위험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한 전례 없는 ‘외출금지령’을 발효하고 경찰 인력 및 군대를 동원하여 제재 조치가 잘 지켜지는지 철저하게 검사하기 시작했다 (아래표 참조, 검색일: 2020년 4월 1일2). 현재 사실상 거의 모든 유럽의 일상이 마비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한 달 이상의 휴교령이 내려졌고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가게들은 모두 강제 휴업에 들어갔다. 뉴스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에서는 경찰들이 드론을 사용해서 거리에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고도 하고, 스페인에서는 경찰들이 행인을 대상으로 가방 검사를 해서 지금 이 사람이 거리에 나와 있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외출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독일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경미한 조치들만 진행 중이다. 나름 인구수가 많은 국가인지라 제재가 시작되면 엄청 심각하게 시작하지 않을까 했던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일단 (몇몇 주를 제외하고) 외출금지령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름 의식 있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일단 영업을 계속하는 생필품 가게에서는 모든 손님들이 개별적으로 쇼핑카트를 끌어야 한다는 방식으로 매장 내 거리두기를 실시했다. 파트너와 함께 장을 보러 왔더라도 개인이 모두 카트를 가지고 입장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모든 개인 간 (카트만큼의) 거리두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혹은 매장 내 인원수를 제한해서 혼잡도를 최소화하는 조치를 실행하기도 한다. 계산대에는 이미 아크릴판으로 서로의 비말이 튀지 않게 가림막이 설치되었고 계산 역시 현금보다는 터치식 카드 결제가 권장된다. 좁은 거리를 두 그룹 이상이 지나가야 하는 경우, 사람들은 알아서 서로의 차례를 기다리고 지나가는 경우 땅을 바라본다거나 혹은 순간적으로 말을 안 하는 (입을 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를 배려한다. 불편할 수 있지만 많은 사회적 만남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나의 파트너의 경우 금요일 저녁 7시면 친구들과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해서 서로 얼굴을 보며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번 부활절 휴일 때 나는 거의 매일 저녁 친구들과 같은 영화를 동시에 보는 넷플릭스 파티를 진행 중이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독일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WirbleibenzuHause (집에 머무릅시다)’ 를 실천하고 있다.
[그림 1] 1.5m 거리두기 안내판
[그림 2] 매장 내 혼잡도 조절로 밖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소비가 멈추고 삶이 시작된다.
그렇다. 일상이 멈췄다. 아니, 멈췄다고 하기엔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니… 최소한의 정도와 속도로 삶이 살아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코로나로 인해 정말 다양한 일상의 구석구석이 변화하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생각 없이 ‘소비’행위로 점철되던 나의 생활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퇴근하고 혹은 주말이면 시내에 나가서 상점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사보는 것이 지난 몇 달간의 내 일상이었다. 월급을 받고 있다는 사회 초년생의 짜릿함을 극대화하기에는 소비가 가장 최적의 방식이어서 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거의 모든 상점들이 닫은 요즘, 일상의 무료함을 소비가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만의 방식을 찾아 나서고 있다. 예를 들면… 그동안 미뤄왔던 영화 보기와 독서가 시작되었고 봄을 맞아 정원에 꽃을 사서 심었다. 매일 아침에 물을 주며 생명이 자라는 감동을 개인적으로 몇 년 만에 느끼게 된 것 같다. 집에서 재미있게 시간을 때우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생각하며 실험 중이다. 평소 같으면 바쁘다는 이유로, 외식이 가능하니 대충 해 먹었을 텐데, 요즘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되는 요리를 시도해본다. 멀리 여행을 가려고 했던 계획이 취소되어서 근처 숲으로 산책을 매일 가본다. 휴가다운 휴가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휴가가 별건가.
놀라운 사실 하나는 유럽에서 관광산업이 일시적으로 정지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자연환경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매번 쌓이던 쓰레기들이 줄어들고 시냇가와 바다는 맑아지고, 그러면서 볼 수 없었던 동물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 누군가 이야기하듯 코로나는 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큰 신호가 아닌가 싶다. 수십억 명이 동시에 함께 움직이자 환경파괴가 멈춘 것이다. 이미 환경파괴 속도는 티핑포인트를 넘겼다고 해서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체념적인 심정이 강했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며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물론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인간들은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갈 것이고 지구의 환경파괴는 이전의 속도를 회복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또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이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분명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편리함만을 생각했던 것을 멈추는 것, 개인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환경을 돌보는 의식을 더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도록, 그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패러다임 변화가 조금이라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1. 미국의 상황이 더 심해지고 있다.
2.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