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째 독일은 코로나 정국이다. 물론 뉴스가 온통 코로나 확진자 추적과 정부대응책 토론으로 도배되었던 지난 4월과 비교했을 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확진자 증가 추이를 보여주는 곡선은 이제 거의 수평이고 몇 주째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진행되고 마스크 쓰기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 역시 심리적인 평정을 되찾는 분위기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5월 14일 현재 독일은 서서히 각종 제한정책을 완화하면서 일상으로 복귀를 시도 중에 있다. 기존에는 ‘생존에 불필요’ 한 것으로 여겨졌던 상점들이 점차 문을 열기 시작했고 주(State)마다 조금 다르지만 학생들 역시 학교로 복귀를 시작했다. 이제 5월 말이면 친구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여름에는 주변 유럽국으로 여행을 계획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희망도 잠시, 이미 전 세계 경제는 크게 타격을 받았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삶 역시 황폐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비와 생산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고 정부정책으로 인해 몇 달간 손님을 받을 수 없었던 독일 자영업자들은 무더기로 파산 신청을 했다. 코로나로 타격을 받았거나 혹은 앞으로 다가올 경제침체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인턴이나 계약직 등을 중심으로 대량 해고를 강행했다. 뮌헨의 경제연구원 Ifo 에서 지난 4월에 수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일 전국적으로 평균 약 18% 가량의 일자리 감축이 진행되었는데, 각 업계에서 밝인 감원률을 보면 요식업 (58%), 직업 중계 업체 (57%), 숙박업 (50%), 신발 생산업체 (48%), 관광 서비스업 (43%), 자동차 업체 (39%) 등으로 추산된다(https://www.ifo.de/en/themen/coronavirus) .
경제 마비,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로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건강위험보다는 코로나가 가져온 경제침체가 미칠 영향이 더 무서웠던 것이 사실이다.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할지라도 ‘해고’와 같은 사회적 결정들은 공평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에서는 나와 같은 계약직이자 수습사원이 해고 대상 일 순위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도 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유급 인턴을 가장 먼저 내보냈다. 스타트업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포지션으로 인턴을 시작한 나의 석사 동기는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본인의 자리 역시 불안하다고 내게 연락이 왔다. 이런 경기침체가 얼마나 걸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들이 재계를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는 아직 수습 기간인지라 2주 통지를 준다면 언제든 해고될 수가 있다. 제길, 겨우 어렵게 일자리를 잡았는데 나도 곧 해고되는 것일까? 해고가 되면 나의 비자 상황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 거지? 독일은 국민은 가난해도 국가는 부자라고 했는데 도대체 독일 정부는 그 많은 세금을 걷어가고 어디에 쓰는 거야?
그러나 나의 우려도 잠시, 나는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다. 독일로 모든 유럽의 이민자들이 몰리는 이유가 있었다. 독일은 역시 유럽의 경제 강대국이자 노동자를 위한 복지체계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경기침체에도 고용 관계가 ‘해고’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고 ‘조업단축 (Kurzarbeit)’라는 형태로 이어져서 불황을 노사가 함께, 조금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이름이 보여주듯 ‘짧은 (Kurz)’라는 단어와 ‘일 (Arbeit)’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조업단축은 경제침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근로시간을 약 50%가량으로 단축해서 고용 관계를 유지하되 정부 보조금을 통해 근로자 임금의 약 70~80%를 보전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평상시에 세후 월 1,600유로를 받는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경기 침체로 인해 회사는 연방노동청(Bundesagendtur fur Arbeit)에 조업단축을 신청하고 이를 직원들에게 통보한다. 그러면 직원들은 주2~3일 근무를 시작하고 회사는 이에 부합하는 만큼의 임금인 약 50%가량을 준비한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줄어든 임금의 60%가량(총 임금의30%)을 보태서 전체적으로는 평상시 임금의 80%가량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큰 부담 없이 이미 잘 훈련된 근로자를 유지하면서 침체 이후를 대비할 수 있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해고라는 극단적 선택을 직면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적게 일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임금은 보전받을 수 있다. 이런 조업단축은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 때도 톡톡히 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현재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친구인 요나스 역시 최근 조업단축에 돌입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근처 타이어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 조업단축해보니 어떻냐고 내가 물어보자 그는 ‘돈을 써야 할 곳은 딱히 줄어들지가 않는데 월급은 평소의 70~80% 밖에 못 받는다’ 고 불평을 하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보전되니 다행’이라고 했다.
자영업자, 프리랜서는 어떻게 하나요?
조업단축은 기본적으로 회사에 소속된 임금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럼 그렇지, 독일 복지정책의 근간은 ‘임금노동자’가 주축이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영세 상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는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주별로 상세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봉쇄조치가 경제활동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면서 3월 말부터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긴급 지원책(Corona-Soforthilfen)이 마련되었다. 신청자가 운영하는 사업장이 어느 주에 있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이 정말 다양하다. 연방정부의 기금과 더불어 주 정부의 기금이 별도로, 혹은 연동되어 지원되기도 하고 Full-time으로 고용되어 있는 직원 수에 따라 일정 금액이 다양한 방식 (대부분 일회성)으로 마련되어있다. 개인적으로는 주변에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없어서 딱히 자세한 사항을 물어볼 수가 없었으나, 베를린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만 하면 3일 만에 통장에 5천 유로 이상이 들어온다는 것으로 언론에 많이 회자되었다.
단순한 증명서 하나를 발급받는 데도 해당 관청에 예약을 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류가 서류를 부르는 엄청난 관료주의가 공고한 독일이다. 그러나 홈페이지로 단순한 개인정보 입력하는 방식은 물론이고 신청한 지 3일 만에 지원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학생으로서 카페 아르바이트가 기약 없이 중지되었을 때 긴급지원금을 수령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분의 경우, 독일 자국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청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금을 신청한 뒤 단 3일 만에 9천 유로에 해당하는 돈이 본인의 은행 계좌에 찍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이분이 거주했던 곳은 노트라인-베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주로 솔로 자영업자 및 자유 직업인(예술가 포함), 최대 직원 50명을 보유한 회사 등이 코로나로 인한 긴급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지원금 액수는 직원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직원 1명~5명을 둔 자영업자의 경우 9,000유로, 6명~10명의 경우 15,000유로, 11명~50명인 경우 총 25,000유로가 일회성으로 지급된다. 이분의 경우는 지원금을 신청하고 수령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신기했다고 한다. 첫째, 독일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무조건 지급되었다는 점. 두 번째, 번역기 도움을 받아 가며 온라인으로 신청을 하는 과정이 평소의 독일과는 다르게 (?) 너무 수월했다는 점. 마지막 세 번째는 병원 예약을 잡는 데만 며칠씩 소요되는 독일에서 단 3일 만에 큰돈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지급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돈에 대한 사용원칙은 존재한다. 임금 지급이나 월세와 같이 사용처가 긴급 자금에 부합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경우는 상환 의무가 없지만 그 이외의 경우는 대출금 형식으로 전환되어 향후 10년 동안 갚아야 한다. 물론 이같은 전례 없는 정부의 행보에 이를 빙자한 사기 사건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
문득 독일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국적의 친구가 조업단축에 들어가며 내게 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독일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세금을 많이 냈던 보람이 있다고.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피식 웃었던 나 자신도 떠오른다. 월급의 40% 가량을 세금으로 고스란히 납부했던 보람이 이런 위기상황에서 느껴지는 것일까? 나 역시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지만 뭔가 불안함이 생각보다는 덜하다. 실업수당이든 조업단축이든 뭔가 나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는 믿음이 생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