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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녹색수도, 독일의 미래기술과 정책] #독일#환경#모빌리티#미래#에너지

- 제목을 ‘독일 미래 모빌리티’로 정하려다 망한 사연 -

 

연재를 시작하며,

2010년, 유학을 목적으로 처음 베를린에 발을 들였을 때, 베를린 도시 풍경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두 가지였다. 바로 서울 광화문 광장 격 되는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에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는 기념시설(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이 거대하게 들어서 있다는 것과 베를린의 웬만한 고층 건물에서 훤히 내다보일 정도의 큰 숲인 티어가르텐(Tiergarten)이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베를린 대성당 전망대에 올라가서 시내 전경을 둘러보는데, 푸른 숲이 넓게 펼쳐진 베를린 중심부를 한참 동안 들여봤던 생각이 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시내 한복판의 땅이 어떻게 값비싼 고층 빌딩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비단 그 두 랜드마크뿐만이 아니다. 시내 어디를 돌아다니더라도 발에 걸리는 슈톨퍼슈타인1이 거리 곳곳에 박혀 있고, 걸려 넘어질 때마다 희생자를 기억하겠다는 집요한 그들의 마음가짐, 시내 중심부와 외곽을 막론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원과 2차대전 후 에야 도시복원을 위해 심었다는 나무들이 벌써 울창한 숲을 만들어, 이런 걸 도시라고 해도 되는지 자꾸 의문을 가지게 만든 베를린, 모든 것이 신선했다.  

 


<저렇게 큰 녹색이 시내 중심부에 떡하니 자리 잡을 수 있다니, 베를린 티어가르텐 ©️ Ralf Roletschek>

 

 

이후 이를 가능하게 한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함을 갖게 되었고, 독일에서 일어나는 환경과 역사(이들에게 역사란 과거와 미래 두 방향으로 향해 있는 듯하다.) 정책에 관한 담론은 나의 큰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베를린에 살면서 독일 및 유럽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 과학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장기간 숙고되어 온 정책들이 불변하는 족쇄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토론되고, 거기에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반응하고 촘촘하게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또한 녹색당이 주요 정당 중 하나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하여 탈핵, 탈석탄 담론을 주도해 나가는 독일 내에서도 여전히 기존 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보수적인 그들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도 새삼 새롭다. 독일이 한국에 비해 느리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은 이처럼 환경, 역사, 정치 분야에서 만은 예외인 듯하다. 앞으로 이 녹색전환연구소 해외통신 연재를 통해서 프로 러너(Pro-learner)로서 접하게 되는 독일의 환경 관련 정책에 관한 전문 자료들을 소개하고, 이 정책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나가는지를 생생하게 전하며, 그 사이사이 오가는 사람들의 말(독일 사람들은 참으로 말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하니까!)을 살아있게 전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 독일은 자동차!

거슬러 올라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근 몇십 년을 더듬어가야 하고, 분야도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저 옆을 한번 둘러볼까? 작년 여름쯤, 베를린에서는 이동수단에 대한 동시다발적 변화를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기차, 수소차와 같은 연료 면에서의 도전이 실제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전동 킥보드와 전기 스쿠터 등 교통수단의 다양한 실험들, 공유 자동차를 넘어서 자동차 구독제(Auto im Abo)가 인기를 끌면서 생기는 모빌리티 소유 형태의 도전들도 목격할 수 있었으며, 더불어 택시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합승택시 개념의 클레버 셔틀(Clever Shuttle)2과 같은 모빌리티 이용에 대한 개념 전환을 이끌어 낸 사례들도 발견하였다. 이 밖에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기술과 결합한 미래 모빌리티 실험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전 차량을 혼다의 전기차로 운행하는 합승 공유 차량 서비스 클레버 셔틀 ©️ CleverShuttle>

 

 

제조업 중심 국가인 독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동차 산업이다. 2019년 독일 연방 경제 에너지부(BMWi)의 통계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기업은 총 4,350억 유로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833,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였다.3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 철강, 화학, 섬유, 에너지 분야에도 걸쳐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막대하다. 전통적으로 강력한 산업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산업에 고용된 인원이 많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이끌고 나가기 위한 경제성장이 늘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독일 정부의 국가 모빌리티의 미래 플랫폼(NPM)의 발표에 따르면, 내연기관의 전기 모빌리티화로 독일 내 2030년까지 약 41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특히 NPM은 엔진과 기어 등 파워트레인 생산 분야에서 88,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4 그러나 이에 대해 자동차 산업협회(VDA)는 이견을 내놓았다. 즉, 향후 몇 년 안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동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255,000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보았기 때문이다.5 아직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떠한 결론으로 닿을지 알 수 없지만,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기존 자동차 산업의 혁신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필요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독일 자동차 산업이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하는 비용은 상당하다. 2018년 연구 개발 비용을 460억 유로(한화 약 63조 원)로 늘렸다. 이는 전년 대비 약 5% 증가한 수치이고, 미국과 일본보다도 앞서 있다. 독일 경제 전체 연구 분야의 직원 중 거의 ⅓(2018년 기준: 131,600명)이 자동차 산업에서 일하고 있을 정도로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독일에서 생산된 자동차의 75%는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데, 성장을 위한 혁신의 노력과 동시에 독일 자동차 산업은 장기적인 구조변화에 직면해 있다.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가능성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기존의 가치 창출 네트워크와 인프라만으로는 변화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한국, 중국 등에서 생산되는 미래 모빌리티 차량 개발에 독일은 한발 늦은 모양새이다. 그러나 인프라 측면에서는 유럽 연합과의 발 빠른 공동 대응으로 인해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잠재력이 매우 높다.

 

 

독일의 전기차 현황 및 정책 동향

독일 자동차 산업 협회(VDA)에 따르면 2020년 2월 한 달 동안의 독일의 새로운 전기차 등록은 사상 최고치인 16,531대 (전년 동월 대비 141% 증가)에 도달했고, 이를 통해 전체 시장에서 6.9%의 점유율을 달성했다. 배터리식 전기 자동차(BEV)도 8,154대가 등록되었으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의 수는 879대로 279% 증가했다.6 현재 독일 내 전기 자동차 수는 약 22만대이며, 공공 충전소는 21,100개가량이다.7


정책적으로 독일은 이미 2009년 8월 친환경 자동차 개발 및 보급을 위한 지원 정책인 국가 전기자동차 개발계획(NPE: Nationaler Entwicklungsplan Elektromobilität)를 입안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기자동차 대중화 정책 추진하였다. 주로 배터리 연구 개발, 관련 자동차 부품 개발, 지능형 전력망 구축, 전기자동차 구매 시 세제 지원 등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후 가장 최근의 정책은 독일 연방정부 기후 내각8이 지난 2019년 11월에 발표된 ‘기후보호프로그램 2030’9 에서 교통 및 운송 부문의 내용이다. ‘기후보호프로그램 2030’는 독일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최소 40% 이상 감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중간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EU 배출권거래제(ETS)에 적용되지 않는 운송과 난방 부문(Non-ETS)에도 2021년부터 탄소 가격제 도입하고, 건물, 운송, 농업, 산업, 에너지, 폐기물 등 부문별 2030 목표 및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발표했으며, 수소 전략, 배터리셀 공장 건설, 지속가능한 재정전략 등 연구개발 및 재정지원 조치를 마련하고, 동 프로그램의 평가 및 미 달성 시 보완 조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전기 모빌리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충전 인프라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2030년까지 대중이 접근 가능한 전기차 충전소 100만 개 확보 ▲모든 주유소에 충전기 설치 의무화 ▲정유업계가 급속충전소를 설치할 경우에는 탈 탄소 조치로 인정해주는 방안 검토 ▲다가구 주택 또는 직장에 공동 또는 상업적 충전 인프라 설치 장려 ▲ 연방정부와 주 정부 및 지방 정부 간 충전 인프라 정책 조율 ▲ 다수 전기차 동시 충전 시 발생하는 전기수요 피크 문제 해결을 위해 배전망 운영자들이 지능형 네트워크에 투자하도록 환경 조성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전기차 관련한 독일의 정책은 국가의 근간이 되는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에서부터 기후 보호에 이르기까지 녹색 혁신의 진일보를 위한 정책 입안과 실현 과정의 하모니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마스터플랜

2019년 9월 독일 정부는 기후 패키지(Klimapaket)를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전기차 환경보조금 증액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BMWi)가 담당하여 전기차 구매자에 대해 환경 보조금을 4천-6천 유로로 증액하는 안을 EU에 제출하였고, 이를 2020년 2월 11일 EU 집행위가 승인한 것이다. 인상된 환경보조금은 2019년 11월 이후 등록된 전기자동차에 적용될 것이며, 4만 유로 이하의 전기차에는 최대 6천 유로, 4만 유로 이상의 전기차에는 최대 5천 유로, 하이브리드 차량에도 금액별 차등 보조금 지급이 이루어질 예정이고, 재원은 정부와 자동차 업계가 반반 씩 부담하여 마련할 계획이다. 이처럼 독일 정부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속속 추진해오고 있는데, 그중 최근 전기 자동차 충전  관련 가장 중요한 발표는 201919년 11월 19일, 독일 연방 정부의 ‘독일의 미래 자동차 충전소 인프라 마스터플랜(Masterplan Ladeninfrastruktur der Bundesregierung)’10이다. 동 플랜에서 연방 정부는 2030년까지 ▲충전소의 수 증설, ▲ 충전소 증설을 위한 적합한 지원 프로그램을 `25년까지 실시 ▲충전 인프라 확장은 상업용 충전소뿐 아니라 개인용 충전소까지 모두를 포괄 ▲배전망 공급자가 스마트 네트워크 등에 투자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법적 토대 구축 ▲ 충전 인프라가 증가함에 따라 필요한 조율을 진행하는 ‘충전 인프라에 대한 국가 관제 센터(Nationalen Leitstelle Ladeinfrastruktur)’설립 ▲약 220,000대 (`19년 11월 통계)의 전기 자동차를 천만 대로 증가시켜서, 자동차 수 대비 충전소 개수를 10%까지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방 정부는 기존의 충전 인프라가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지 판단하기 위해서, 모든 조치를 소비자 중심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11

 

 

‘독일 미래 모빌리티’를 논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이 정도가 현재 독일의 전기차 관련 현황을 아주 개괄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현황을 정리하면서 마음도 머리도 상당히 복잡했던 것은 글에서 ‘독일의 미래 모빌리티' 대한 단순한 수치와 통계만을 전달하는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즉, 독일 미래 모빌리티를 논하기 위해서는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전기차가 등장하기까지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역사,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 및 세계의 맥락 안에서 독일의 기후 보호 정책의 흐름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에너지 및 연료 분야의 이야기, 동시에 이러한 정책이 힘을 받아 진행되기 위해서 일상에서 시민들의 환경 의식과 실천 영역을 함께 들여 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 및 언론에서 전하는 독일 소식과는 다른 생생함을 전달하고자 굉장히 많은 시간 공들여 고민했지만, 인제야 어렴풋이 목차가 그려질 정도로 방대하고 아득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뽕(?)에 빠져 독일의 정책이 무엇보다 훌륭하다는 식의 관점은 피하고자 한다. 가장자리에서부터 거슬러 가더라도 독일의 정책이 한국에 어떠한 시사점을 안겨주며, 한국의 녹색 전환에 무엇보다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소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독일#환경#모빌리티#미래#에너지라는 키워드로 글을 전하고, 한국과 독일을 넘어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면 하는 작은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보아주시면 감사하겠다.

 

 

 

                                                                                                     

1. Stolperstein:걸림돌, 베를린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바닥에 금색 네모난 쇠붙이가 박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나치에 의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 희생자들이 살았던 집 앞이나 거리에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로 베를린에만 5,000여개가 있다. 
2. 특히 클레버 셔틀은 전 차량이 전기차로 운행되고 있어 환경 문제에 민감한 독일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3.  링크
4.  링크
5.  링크
6. 링크
7.  링크
8. 독일 연방정부 기후내각(Kabinettsausschuss Klimaschutz)는 2019년 3월 20일 처음 소집되었으며, 연방 총리, 6개 기후관련부처 장관(환경, 재무, 경제, 건설, 교통, 농업), 연방총리실장 및 정부대변인(차관급) 등 9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9. 링크
10. 링크
11. , 전기차 충전 마스터 플랜 서술 부분은 필자가 리서치를 진행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KEIT) 유럽사무소의 ‘(GT주간브리프-베를린) 독일연방정부의 전기차 충전인프라 확대 마스터플랜 주요내용’ 을 요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