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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녹색 수도, 독일의 미래 기술과 정책] 독일 가스, 그리고 러시아

지금 독일에서는 거의 모든 언론의 주요 뉴스가 우크라이나 소식이다. 독일이 유럽 연합 내 최강국 중 하나이고, 나토 회원국인데다가 폴란드를 사이에 두고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베를린은 1,400km의 거리이다. 게다가 러시아와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독일과 러시아의 이해관계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단연 가스이다.  

 

독일은 가스 수요의 절반가량을 러시아에서 충당하고 있다. 주요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산 가스의 비중, 출처: statista

 

 


러시아산 가스 소비국 순위, 출처=statista

 

 

러시아 입장에서도 독일은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러시아 천연가스 최대 소비국이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독일 내부의 상황을 더 들여다보자. 2021년 기준 독일 총 전력 생산에서 에너지원별 비율은 천연가스가 15.3%로 신재생에너지(40.9%), 갈탄(18.9%) 다음으로 높다. 작년 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올라프 숄츠 총리와 연정을 구성한 신호등 정부는 연정 합의문을 통해 ‘가스와 수소 재생 가능한 전기 및 수소를 위한 에너지 인프라는 21세기 유럽의 행동 능력과 경쟁력을 위한 전제 조건’임을 밝혔다.

 


최종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기존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원자력을 대체하기 위한 천연가스는 전환 기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 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즉, 현재도 그리고 ‘2038년 탈석탄’, ‘204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독일에 천연가스는 당분간 굉장히 중요한 에너지원임을 시사한다.

 

 


2021년 독일 총 전력 생산에서 에너지원의 비율, 출처=clean energy wird

 

 


2021년은 전년도 대비 신재생에너지 소비가 감소했지만, 석탄(Lignite, Hard Coal)소비가 18%나 증가하였고 천연가스도 4% 증가했다. 2020년 독일의 대략적인 에너지 소비 영역을 살펴보자면, 난방 52.1%, 전기 21.4%, 운송 26.5%를 차지하고 있다.

 

노랑=난방(전기 제외), 파랑=전기, 연두 =운송 부문(전기와 항공제외) 한 영역의 소비량이다. 출처=Agentur für Erneuerbare Energien

 

 

독일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러시아에 가스 수입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비판이 내외적으로 있어왔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1,200km 길이의 가스관 노드스트림-2은 2021년 9월에 건설이 완료되었다. 이후 공교롭게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 배치를 개시한 것은 작년 10월부터이다. 독일 연방정부 산하 독립 규제기관으로 독일의 전기, 가스 시장의 개발, 경쟁, 구조 개편, 규제 등을 관리 및 감독하는 독일 연방 네트워크 산업청(BNetzA)은 이후 2021년 11월에 노드스트림2가 ‘법적 세부 사항 조건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가스관의 승인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노드스트림-2에 대해서 독일 내 지지자들은 ‘이 가스관은 유럽의 연료 공급을 위한 현명한 투자’라고 주장한다. 즉, 단계적으로 석탄을 폐지하면서 발생하는 전력망에 대한 부담을 노드스트림-2가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환경적, 지정학적, 안보의 이유’ 로 비판을 해왔다. 먼저, 취약한 해양 생태계에 해를 입히고,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를 매우 위험한 수준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독일 내 반대뿐만 아니라 미국과 동유럽의 국가들도 같은 이유로 지속적인 반대를 표명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인 독일은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거의 전량 (2018년 기준 94%)를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다. 독일 내 천연가스 생산량은 2004년부터 감소하고 있고, 향후 10년 안에 완전히 중단될 예정이다. 앞으로의 추가 개발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독일의 가스 수입처는 러시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체코 등이 해외에서 대부분의 양을 수입하고 있다. 출처=로이터

 

 

이 가스는 독일 내에서만 사용이 되는 것이 아니고, 독일이 유럽의 경유 국가로 유럽 여러 나라에 가스를 공급하는 길목의 역할이 되기 때문에 이는 유럽 전체에 대한 위험신호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통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수년간 독일 연방정부는 노드스트림 2가 순수한 경제 프로젝트이고, 국가가 간섭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해왔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여러 동유럽 국가들은 이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를 표명했고, 2018년 4월 당시 독일 총리였던 앙켈라 메르켈 총리는 ‘단순한 경제 프로젝트가 아닌 정치적 요인도 고려 해야 한다.’ 고 우크라이나의 우려를 수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프로젝트를 계속해왔다.

 

노드스트림2에 관한 논쟁이 불거지면서, 독일 정부는 탈탄소, 탈석탄을 추진하는 에너지전환(Energiewende) 정책을 강조해 왔다. 이 정책안에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이를 위해 에너지 효율성을 증가시키며,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천연가스가 향후 수십 년 동안 독일 에너지 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2021년 12월 신임 총리로 선출된 올라프 숄츠는 노드스트림의 운영 허가를 내리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전쟁이 발발하고 난 이후에도 독일 정부는 앞으로 석탄, 석유, 가스 등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중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단계적으로 추진하던 탈석탄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2030년까지 폐쇄할 계획이었던 일부 석탄발전소를 예비 전략원으로 삼아 필요할 경우 신속하게 가동한다는 입장이다. 매우 아이러니한 점은 석탄도 기존에 러시아로부터 수입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자국의 탄광 시설 등에 대한 재개발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현 전쟁이 장기적인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독일 정부도 고심이 깊다. 먼저 당장의 가스 공급 감소나 중단을 대비한 ‘비상 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단기 대책을 논의하는 중이지만, 수 십년 간 의지해 왔던 에너지 공급을 빠르게 대체할 마땅한 방법은 없어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상황이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앞당길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당분간 독일은 정치적인 면에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