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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을 한다고요?] 탄소중립기본법을 읽는 3월

* 이 글은 민중의소리에 23년 2월 26일에 기고된 글임을 밝힙니다.

 

학교에서 사회까지 단체 생활을 하면서 얻은 교훈 한 가지는, 두꺼운 규정집이나 법령은 웬만하면 멀리하는 게 좋다는 것. 하지만 친구, 동료가 어떤 문제에 휘말렸을 때, 그래서 규정집을 조목조목 읽으며 어떤 단서를 찾고 있을 땐, 어느 샌가 다시 같이 앉아 읽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그런 상황은 한 개인의 범위를 넘어 깊고 넓은 맥락 수준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거고, 혼자 골몰해봤자 뾰족한 수를 찾기는 어려우니까 말이다.

 

“기후위기가 인류 공통의 문제라는 인식 아래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최대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개발도상국의 환경과 사회정의를 저해하지 아니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한다.”

2015년 파리, 2018년 인천에서 제안됐던 1.5도씨 제한목표는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2050 탄소중립 논의가 뜨겁게 타올랐던 2021년 여름을 지나며, 결국 당해년도 9월 24일에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제3조 제8항에 담기게 됐다. 그리고 2023년. 한 달 뒤인 3월 25일은, 이 법이 시행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기후위기 대응 논의에 있어서 탄소중립기본법이 가진 의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 그전까지는 선언 수준이었던 ‘2050 탄소중립’이 법제화를 통해 국가 목표로 확정했다는 것. 둘, 2050 탄소중립을 위해 2030년까지 이행해야 하는 중간 목표가 설정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 2018~2019년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출력 제한 조치로 인한 부수적이고 단발적인 온실가스 감소는 경험해봤지만, 아직까지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감축을 이뤄본 경험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비전과, 앞으로 7년 안에 2억 톤 가까운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중장기 목표 모두, 기존의 정책 우선순위와 예산 배분 방식은 물론 기업과 시민의 인식과 행동에서 급격하고 대대적인 전환이 이뤄져야만 달성할 수 있는 과제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담긴 게 탄소중립기본법이니, 기후위기라는 말도,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논의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 우리나라의 토양을 생각한다면, 분명 큰 의미가 있는 법이다.

3월 25일은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마감일

이러한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된 지 1주년이 되는 2023년 3월 25일은 정부에게 주어진 아주 중요한 과제의 마감일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을 목표로 설정했으니, 정부는 이제 그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그 전략과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기본법에 의한 정부의 다음 책무이다. 기본법은 이 과제를 두 부분으로 나눴는데, 바로 제7조 제2항에 따른 국가전략, 제10조 제1항에 따른 국가기본계획이다. 그리고 정부가 그 첫 내용을 준비하는 데 1년의 시간을 줬다. 그 마감일이 오는 3월 25일인 것이다.

이 과제의 ‘서론’ 부분은 ‘국가전략’으로, 정식 명칭은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전략’이다. 어떤 내용을 기대해야 할까? 이는 국가전략의 목차라고 볼 수 있는 탄소중립기본법 제7조 제2항에 자세히 쓰여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부문별로 어떤 전략과 중점추진과제가 있을지, 그러한 정책, 전략, 그리고 과제가 우리 국민의 삶과 국가 주권의 기반인 환경·에너지·국토·해양 등을 다루는 정책과는 또 어떻게 연계될지, 그리고 이를 위한 재원조달과 인력양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담아야 한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내용보다는 진전되겠지만, 여전히 총론적인 수준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마 각 부처의 기존 탄소중립 추진전략에서 대부분 가져오지 않을까? 그래서 크게 기대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는 부분이다.

과제의 핵심은 ‘본론’인 ‘국가기본계획’, 정식 명칭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있다. 이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기본계획의 목차라고 볼 수 있는 탄소중립기본법 제10조 제2항, 그중에서도 제4호와 제10호, 그리고 시행령 제5조 제2호에 기술되어 있다. 순서대로 ① 부문별·연도별로 확보할 수 있는 감축량과 ② 그에 필요한 재원의 규모, 그리고 ③ 감축대책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다.

모두 숫자인데, 단 하나도 간단한 숫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국가기본계획을 세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일단 계산을 시작하면 대답해야 할 질문이 고구마 줄기처럼 끝도 없이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얼마만큼의 예산을 쓸 생각인지, 그 예산은 연도별·부문별·사업별로 얼마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지, 연도별·부문별·사업별 예산과 감축량의 배분 기준은 무엇인지, 그 감축량을 모두 더하면 국내에서 계획한 만큼을 줄일 수 있는 것이 맞는지, 그게 아니라면 연도별·부문별·사업별 예산과 감축량을 재조정할 것인지, 예산을 더 책정할 것이라면 추가 재원은 어디에서 충당할 것인지, 그게 여러모로 어렵다면 국외에서 탄소배출권을 얼마나 사와야 하는지, 아니면 바다 속에 얼마나 묻어야 하는지, 부문별 목표에 변화가 생겨 원래 계획했던 양보다 더 사 오거나 더 묻어야 하는지, 그 계획대로 못 사 오거나 못 묻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면 그사이 발굴된 다른 새로운 감축수단이라도 있는지, 감축 대책과 과정에서 생겨날 편익은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그 모든 계획은 탄소중립기본법 제3조에서 제시한 기본원칙에 부합하는지… 국가기본계획은 이런 어려운 질문들에 답하면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국가기본계획은 국가전략과 다르게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숫자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숫자를 현실로 만들려면 돈이 든다. 그래서 국가기본계획은, 그 내용의 구체성이나 과감성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각기 다른 이해당사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 정도만 꾸준히 언급했던 정부의 일관성을 봤을 때, 부문별 세부 감축목표 재설정에 있어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걱정을 더욱 증폭시키는 건, 국가전략과 국가기본계획의 최종 수립까지 고작 한 달이 남은 지금에도 아직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감무소식인 기본계획 초안을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2021년 10월을 떠올려본다. 나를 포함한, 당시 ‘2040기후중립청년제안’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던 이들은 진심으로 1.5도씨 제한목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최소 60%는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당시 탄소중립위원회에 우리의 대안 시나리오와 질의서를 수차례 전달했다. 또 우리는 탄소중립기본법 기본원칙에 분명히 명시된 세대 간 형평성의 원칙,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가열 수준을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원칙, 민주적 참여 보장의 원칙 등을 들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감축목표 확정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고작 총배출량 기준 30%의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일방적 동의를 구하는 게 옳은지를 따져 물었다.

그 후 1년 5개월이 지났다.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기후재난과 기상관측 신기록 소식이 이어졌으며, 반지하와 농경지는 또다시 물에 잠겼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이웃을 잃었으며, 유엔환경계획은 이대로라면 1.5도씨 제한목표 내에 머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2023년 2월, 지금 우리는 당장 언제라도 극화될지 모르는 에너지·식량·안보 복합위기 안에 살고 있다. 아직 1.2도씨 올랐는데 이렇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3도씨 가열된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대로 가다가는 2021년 10월이 재현되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의견 개진이나 숙의의 가능성은 2021년 때보다도 낮아 보인다.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국가전략과 국가기본계획 초안도 공개되어 있지 않고, 공개 일정조차 모른다.

물론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게 하나 있다. 바로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 중이라는 것. 2021년 10월에는 제정만 된 상태여서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이제는 엄연히 시행 중인 법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 법의 존재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국가기본계획 초안을 기다리는 이 시간, 원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이 시간을 이용해 탄소중립기본법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정부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결국 이 법에 따라 국가전략과 국가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이다. 우리가 그 과제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그 과제의 수준에 대한 평가를 준비하자는 이야기다. 평가항목은 이미 탄소중립기본법에 나와 있다. 충분히 많은 단서를 찾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법의 허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에게 말하자. 개정의 여지를 찾자. 마침 국회에서는 최근 ‘기후위기특별위원회’도 가동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살펴보자. 먼저 2021년 10월에 발표되었던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살펴보고, 시간이 더 있으면 부록에 실린 ‘청년이 제안하는 2040 기후중립 시나리오’도 살펴보자. 성에 차지 않는다면, 국내외 기후 싱크탱크 네 곳이 모여 분석, 제안한 ‘K-Map 시나리오’도 살펴보자. 혹시 내가 사는 지역에서, 아니면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면 검색창에 ‘녹색오리’를 쳐보자. 들어가서 ‘녹색전환공론장’과 ‘모임’ 게시판을 살펴보자. 그래도 아쉽다면 친구와 가족을 붙잡고 이 이상한 날씨에 대해, 아니 기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을 걸어보기 시작하자. 지금 이 상황은 한 개인의 범위를 넘어 깊고 넓은 맥락 수준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거고, 혼자 고민해봤자 뾰족한 수를 찾기는 어려우니까.

 

탄소중립기본법의 기본원칙을 되새기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앞에서 미래를 비관하고 일상에서도 수시로 무력감을 느끼는 날이 많아진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시행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탄소중립기본법의 기본원칙은 지켜진 적이 없고, 기성세대 정책결정자들은 겉으로는 청년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오늘도 우리를 3도씨 가열된 전례 없는 미래로 내던지고 있다.

이제 곧 3월. 정부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국가전략과 국가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탄소중립기본법 제3조 제7항, 제4조 제7항, 제7조 제3항, 제8조 제6항에 의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준비가 됐든 안됐든, 대국민 공청회를 열어야만 한다. 그날,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한쪽에는 기본법을 펼쳐두고 공청회를 들을 생각이다. 그저 제3조의 기본원칙을 되새기면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은 다음 각 호의 기본원칙에 따라 추진되어야 한다. ① 미래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하여 현재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세대 간 형평성의 원칙과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에 입각한다. (중략) ④ 기후위기로 인한 책임과 이익이 사회 전체에 균형 있게 분배되도록 하는 기후정의를 추구함으로써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동시에 극복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취약한 계층ㆍ부문ㆍ지역을 보호하는 등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한다. (중략) ⑤ 환경오염이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재화 또는 서비스의 시장가격에 합리적으로 반영되도록 조세체계와 금융체계 등을 개편하여 오염자 부담의 원칙이 구현되도록 노력한다. (중략) ⑦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 과정에서 모든 국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