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 ‘한국 전환금융, 녹색으로 향하는가’ 이슈브리프 13일 발간
EU·일본·영국·아세안 비교 결과, 한국 전환금융 형식적 전환 의지 선언만으로 전환금융 수혜 자격 충족 가능 구조
진입·검증·공시·제재 4단계 전반에 걸쳐 완화된 기준 누적…실질적 탈탄소 담보 어려워
업종별 감축 로드맵 거버넌스·외부 검증 의무화·공시 체계 구체화·탄소고착 방지 일몰 조건 설계 정비 등 필요
오선아 경제전환팀 연구원 “한국 전환금융, 탈탄소 ‘징검다리’ 아닌 ‘형식적 이름표 될 위험 높아”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이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과 탄소 고착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녹색전환연구소는 13일 이슈브리프 ‘한국 전환금융, 녹색으로 향하는가’를 발간했다. 이슈브리프는 정부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이 유럽연합(EU)·일본·영국·아세안(ASEAN) 등 어느 나라의 방식과도 다른 방식으로 설계됐으며, 현 구조 안에서는 부실한 전환계획이 어느 관문에서 걸러지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유화학·시멘트·발전 등 고탄소 산업의 탈탄소화가 중요하다. 전환금융은 고탄소 산업이 저탄소로 전환하는 과정을 금융으로 지원하기 위해 고안됐다. 기존 녹색금융의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기업에 일종의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수단이다. 일본을 시작으로 EU·영국·아세안 등이 앞다퉈 제도를 정비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기후대응과 산업경쟁력을 동시에 잡으려는 전략적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지난 2월 25일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전환금융 시대의 막을 열었다. 민간 자본을 녹색전환(GX)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 이행 수단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다.
EU·일본·영국·아세안 비교했더니…한국만 전환금융 기준 없어
한국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EU형 활동 기준 접근(K-택소노미 기반)과 일본형 기업 경로 기반 접근(전환전략 기반)을 결합한 ‘혼합모델’을 표방한다. 그러나 연구소가 실제 설계를 살펴본 결과, 한국 가이드라인은 두 접근 어느 쪽에서도 핵심 원칙이 충실히 구현되지 않았다.
EU는 사전에 설정된 정량기준과 DNSH(Do No Significant Harm·무해) 원칙을 통해 전환 적격성을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신뢰성 중심 모델이다. 일본은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4대 요소 전체 충족을 원칙으로 요구하고, 영국 역시 15개 핵심기준을 통해 기업 전환전략을 검증한다. 아세안은 감축목표 수준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해 신뢰성과 유연성을 균형 있게 유지한다.
반면, 한국은 두 트랙을 병렬로 허용하면서도 어느 경로에서도 실질성을 담보할 공통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전환금융이 실제 탄소 감축으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슈브리프는 “한국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혼합모델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연성이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어느 국가도 선택하지 않은 방식에 가깝다”고 밝혔다.
한국형 전환금융, 진입·검증·공시·제재 4단계 모두 구멍…‘탄소고착’ 우려
연구소가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지점은 완화된 기준이 네 단계 전반에 걸쳐 동시에 누적된다는 것이다.
첫째, 진입 단계에서는 기업의 전환의지 선언만으로도 전환금융을 받을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충족된다. 외부 경로 채택 확인서 제출 또는 자체 전환계획 수립 중 하나만으로도 전환금융 적격 인정이 가능한다. 세부 실행계획이 없어도 전환의지 3등급으로 분류된다.
둘째, 외부 검증은 의무가 아닌 임의 사항이었다. 기업이 자체 서약서만 제출해도 전환금융 취급이 가능하고, 제3자 검증이 없어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셋째, 공시 단계도 문제였다. 공시는 금융회사에 대한 보고에 한정되며 시장 공개 의무는 없다. 어떤 기업이 어떤 근거로 전환금융을 수령했는지, 이후 감축경로를 따르고 있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단이 없었다.
마지막 넷째, 전환금융을 받고 저탄소 전환을 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었다. 미이행 시 전환금융을 일반금융으로 전환하거나 우대 혜택을 축소·취소하는 수준에 그친다. 개선 요구와 혜택 축소 모두 금융회사의 재량 사항으로 설계됐으며, 추가적인 금전적·법적 책임은 없다.
이슈브리프는 “어느 한 단계의 문턱이 낮더라도 다른 단계에서 보완될 수 있다면 부실한 계획은 결국 어딘가에서 걸러질 수 있다”면서 “그러나 네 단계가 모두 동시에 낮은 기준으로 설계된 상황에서는 부실한 전환계획이 진입부터 사후 관리까지 어느 지점에서도 걸러지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이 구조가 낳을 수 있는 위험 중 하나가 ‘탄소고착(Carbon Lock-in)’이다. 탄소고착이란 전환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자금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처럼 탄소를 계속 내뿜는 설비의 수명만 늘리는 데 돈이 쓰이는 상황을 말한다. 일몰 시점, 즉 “이 설비는 언제까지만 운영한다”는 명시적인 기한이 없으면 전환금융이 오히려 고탄소 인프라를 더 오래 붙잡아두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재 가이드라인에는 이를 막을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검증 의무화·일몰 조건·파리협정 기준 재설계 등 3가지 정책 제언”
한편, 전환금융 체계가 도입됐음에도 K-택소노미 내 ‘전환 부문’이 녹색 범주 안에 잔존해, LNG 발전 등 화석연료 기반 투자가 녹색금융으로 인정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지난 7년간(2018~2024년) 발행된 발전 분야 녹색채권 중 LNG 발전이 약 36%(2조 8,000억 원)을 차지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가이드라인이 준거로 삼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자체가 국제 과학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점 역시 지적됐다. 한국이 제출한 2035 NDC의 상한(61%)조차 환산 시 국제 권고치(61.2%)에 미치지 못한다. 가이드라인이 ‘NDC 달성을 최우선 고려’하도록 명시한 이상, 기업의 감축목표 역시 자연스럽게 NDC 하한에 수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출발선이 이미 낮게 설정된 상황에서 전환금융이 유도하는 고탄소 산업의 전환 수준도 처음부터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연구소는 이슈브리프에서 3가지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첫째, 기업 전환전략의 기반이 되는 ‘업종별 감축 로드맵’ 수립 권한을 기후에너지환경부 또는 GX 컨트롤타워 중심으로 재편하고, 전환전략의 기준을 ‘NDC 우선’이 아닌 파리협정 목표 부합 원칙에 근거해 설계해야 한다. 둘째,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의 제도적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별도의 전환 분류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전환계획에 1.5°C 시나리오 정합성·중간 감축목표·화석연료 설비 일몰 일정을 필수 기재 항목으로 명시하고, 이행 실적의 정기 공시 및 제3자 검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슈브리프 저자인 오선아 경제전환팀 연구원은 “전환금융이 ‘징검다리’가 아닌 ‘형식적인 이름표’로 소비될 위험이 작지 않다”며 “전환금융의 신뢰성은 제도를 만든 정부가 그 제도를 얼마나 충실하게 보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슈브리프는 녹색전환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끝>
보도자료 전문을 참고해주세요.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