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싱크탱크 포지티브머니·녹색전환연구소 20일 보고서 ‘한국은행의 보다 과감한 환경전략을 위한 정책 제안’ 발간
- 한은 녹색 중앙은행 정책, G20 회원국 20개국 중 13위, 아세안+3 13개국 중 8위로 하위권
- 금통위 회의 19번 열린 동안 기후변화 단 2차례만 언급
- 최기원 경제전환팀장 “동료 중앙은행과 격차 벌어지는 사이 금융 리스크 커져 …신임 총재 취임 계기 변화 촉구”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이 물가를 위협하는 가운데, 신현송 신임 총재 취임을 앞둔 한국은행이 금리 정책이라는 전통적 통화정책을 넘어 ‘녹색 통화정책’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국제적 제안이 나왔다.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 싱크탱크 포지티브머니(Postive Money)와 한국의 기후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 ‘한국은행의 보다 과감한 환경전략을 위한 정책 제안(영문 제목: A Bolder Environmental Strategy for the Bank of Korea)’을 20일 오전 공동으로 발간했다.
중앙은행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나선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이미 보편화되었다. 기후 및 생태계 시스템의 붕괴는 금융 불안정의 핵심 원천이자 사회적 복지를 위협하는 심각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주요 세계 중앙은행들은 이미 자신들의 도구와 정책을 기후 위기에 맞춰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한국은행의 행보는 국제적 흐름이나 아시아 지역의 인근 국가들에 비해서도 현저히 늦다고 지적한다.
보고서 공동 발간 기관인 포지티브머니는 주요20개국(G20) 중앙은행 기후대응 정책 순위를 평가해 왔는데, 2024년 순위는 20개국 중 16위였다. 또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와 한·중·일을 평가한 2025년 순위표에서도 13개국 중 8위로 평가한 바 있다.
한국은행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은 2021년 기후변화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이후 전담 조직인 지속가능성장실을 설치하였으며, 기상이변의 물가 영향, 전환리스크·물리적 리스크,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등 40편 이상의 연구를 쏟아냈다.
그러나 2021년 전략에서 예고했던 ▲녹색채권의 중앙은행 적격담보 명시적 포함 ▲외화자산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통합 운용 전략 등의 정책들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았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활용한 녹색기업 지원은 그 수준이 중국이나 일본 중앙은행의 신용 정책에 비하면 미미하다. 600조 원 이상에 달하는 외화자산 운용의 ESG 비중도 늘고는 있으나 녹색채권의 비중은 낮고(0.5%) 자산의 온실가스 배출 등 기후 영향은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다.
금융통화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도 소극적이다. 금통위 의사록(2025년 1월~2026년 3월, 총 19회 회의)을 분석한 결과, 기후변화가 의제로 오른 회의는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기후변화의 물리적 충격에 대한 단편적 언급이었다.
보고서는 이 괴리의 원인을 세 가지 구조적 문제로 진단한다.
첫째, ‘시장 중립성’ 도그마다. 한국은행은 특정 산업을 편향 지원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현상 유지를 선택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논리 자체가 허구라고 반박한다. 한국 채권 시장은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고탄소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 구조를 강화하는 선택이 된다. 한국은행의 시장 중립성은 사실상 ‘고탄소 중립성’ 이다.
둘째, 취약한 녹색 인프라다. 국내 녹색채권 시장은 경제 규모 대비 여전히 작다. 친환경 투자를 판단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는 액화천연가스(LNG)를 ‘과도기 연료’, 원자력을 ‘녹색’으로 분류하는 등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한국은행 스스로 “녹색채권 발행 부족과 인증 절차 미비가 정책 추진의 장애물”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셋째, 보수적 거버넌스 구조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는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대한상공회의소·은행연합회 추천 인사들로 구성된다. 기업과 금융의 이해관계를 구조적으로 우선시하는 체계에서, 기후는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올라오기 어렵다.
보고서는 이러한 한은의 ‘기후 외면’이 경제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행 자체 스트레스 테스트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 부문 잠재 손실은 금세기 말까지 최대 45조 7,000억 원에 달한다. 보고서는 이마저도 기후·생태적 위험을 과소평가한 수치라고 지적한다.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해당하는 1,02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2023년 기준 실제 투자액은 이 수준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0위권 국가로, 탈탄소화가 늦어질수록 좌초자산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기후 및 생태계 파괴의 영향이 중기적으로 심화되면서 지속적인 물가·거시경제 불안정의 원인이 될 것이며, 현재의 통화정책으로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경고다.
이러한 인식 하에 보고서는 여섯 가지 정책 제안을 내놓았다.
1. '이중 중대성' 관점 공식 채택: 기후·생태 위기를 ‘외부에서 오는 위험’으로만 보는 현행 접근을 버려야 한다. 금융 시스템 자체가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기도, 완화하기도 한다는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관점을 통화신용정책의 공식 토대로 삼아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와 프랑스 중앙은행은 이미 이 원칙을 정책과 연구에 명시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2. 담보 체계 녹색화: 녹색채권을 대출·RP·차액결제 담보 자산으로 명시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현재는 2023년 담보대상 자산의 확대의 부수 효과로 녹색채권이 일부 포함됐을 뿐, 비은행 금융기관·기업 발행 녹색채권 다수는 여전히 제외다. 나아가 탄소집약도가 높은 자산에는 담보 할인율(haircut)을 상향 적용하고, 화석연료 확대 기업 관련 자산은 담보에서 배제해야 한다. 중국인민은행과 ECB가 시행 중인 방식이다.
3. 녹색 금융중개지원대출 신설: 현재 30조 원 규모의 한국은행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프로그램에서 녹색기업 지원은 지방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의 극히 일부로만 운용된다. 이를 독립적이고 대등한 위상의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Green FILSF) 프로그램으로 분리·확대해야 한다. 지원 기준을 기후환경에너지부 인증 기업에 국한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설비 도입·에너지 효율 개선 등 구체적 활동 기준으로 넓혀야 한다. 실제로 중국인민은행 탄소감축특별대출(CERF)은 2024년까지 약 284조 원을 공급해 2억 톤 이상 감축효과를 냈고, 일본은행의 녹색 재융자 프로그램 잔액은 현재 약 198조 원에 달한다.
4. 외화보유액 포트폴리오 녹색화 및 전면 공시: 2024년 기준 4,281억 달러(약 640조 원)의 외화자산 운용액 중 ESG 투자 비중은 5%, 녹색채권은 0.5%에 불과하다. 일부 석탄과 무기 투자를 배제하는 단순한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넘어, 탄소 감축 성과에 따라 투자 비중을 차등화하는 등의 ESG 통합 전략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 특히, 국가 전략을 이유로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는 외화자산의 탄소집약도·금융배출량·산업 부문별 비중을 즉각 공시해야 한다.
5. 녹색 통안채 발행: 현재 약 110조 원 잔액을 유지하고 있는 통화안정채권(통안채) 일부를 녹색채권 원칙에 부합하는 ‘녹색 MSB’로 발행하고, 조달 수익을 장기 녹색자산 투자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은행 시스템의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는 기존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녹색금융을 확대할 수 있는 부채 측면의 혁신적 수단으로, 유동성 확대에 부담이 있는 한국은행이 채택하기 용이하다. 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 외에는 아직 이를 추진한 사례가 없어 한국은행이 세계 최초 선도자가 될 기회로 평가한다.
6. 거버넌스 전면 개혁: 금통위에 기후부 장관 또는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장 추천 인사 1인, 시민사회·노동조합 추천 인사 1인을 포함시켜야 한다. 기업의 공시의무화 로드맵이 발표된 만큼 한은은 TCFD·TNFD 기준에 따른 자체 기후공시를 즉각 시작하고, 스코프3(보유 자산의 기후 영향)까지 포함한 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은행법에 통화신용정책과 자산 운용에 기후변화를 고려하도록 하는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
보고서 저자인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팀장은 “기후변화는 한국은행이 사명으로 삼는 거시경제의 안정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다른 중앙은행들이 시행하고 있는 녹색 통화정책 이행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이란 전쟁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화석연료 위기에 취약한 국가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강조하며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 경제의 기후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보고서는 한국어본과 영문본으로 발행돼 녹색전환연구소 홈페이지와 포지티브머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기관은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책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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