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녹색전환연구소·영국 런던정경대(LSE) 산하 TPI 센터, 경제전환전문성센터(CETEx) 지난 23일 여수기후주간에서 ‘국가 및 기업 전환계획 간 시너지 확대: 한국 사례 조명’ 공동 개최
- TPI 센터 분석 결과, 한국 주요 기업 46개사 중 18곳 기후 전환 관리 역량 가장 높은 레벨 5
- 녹색전환연구소 “한국 기업 전환 의지 확인됐지만, 전환금융 가이드라인 구조적 허점 경고”
- ▲스코프3 포함 ESG 공시 시행 ▲업종별 정책 로드맵 준비 ▲신뢰할 수 있는 전환금융 체계 등 필요
전남 여수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3차 기후주간 및 녹색대전환 국제주간’이 열린 가운데 한국 주요 기업 46개사의 기후 전환 현황 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 주요 기업들이 전환계획을 세우는 역량에서 아시아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전환금융 체계가 구조적으로 미흡해 기업들의 전환 성과가 실질적인 탈탄소화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졌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 산하 TPI 글로벌 기후전환센터(TPI Global Climate Transition Centre, 이하 TPI 센터)의 안토니나 쉬어 정책부국장은 이같은 분석 결과를 지난 23일 ‘국가 및 기업 전환계획 간 시너지 확대: 한국 사례 조명’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세미나는 런던정경대 산하 TPI 센터, 경제전환전문성센터(CETEx) 그리고 한국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베네치아 호텔부라노홀, 3층에서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열렸다.
TPI 센터 연구에 따르면, 한국 기업 46곳 중 18곳이 기후 관리 역량 부문에서 레벨 5(전환계획 수립 및 실행)로 평가되며 주변 아시아 국가 대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실제 탈탄소화로 이어지려면 ▲스코프3를 포함한 ESG 공시 의무화 ▲업종별 정책 로드맵 ▲신뢰할 수 있는 전환금융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 46곳 중 18곳 전환계획 ‘최고’ …전략적 평가 역량 과제로 남아
TPI 센터는 글로벌 기업 2016개 기업의 기후행동을 평가해 왔다. TPI 센터의 기업 기후행동 평가 프레임워크는 크게 ‘관리 역량(Management Quality)’과 ‘탄소 성과(Carbon Performance)’ 등 두 축으로 구성된다. 관리 역량은 온실가스 배출 거버넌스와 탈탄소전환 대응 수준을, 탄소 성과는 기업의 배출 감축 목표를 파리협정 목표와 비교·벤치마킹한다.
TPI 센터는 관리 역량 부문에서 기업을 0에서 5까지 6단계로 측정한다. 가장 낮은 레벨 0은 기후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다. 레벨 1은 기후변화를 인지하는 인식 단계, 레벨 2는 온실가스 측정·관리 등 역량을 구축하는 단계다. 레벨 3부터는 기후리스크 및 기후대응 등을 운영 의사결정에 통합하는 단계이며, 레벨 4는 기후변화를 전략적 리스크로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단계다. 마지막인 레벨 5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구체적인 전환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최고 수준이다.
관리 역량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은 아시아 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냈다. TPI가 평가한 46개 한국 주요 기업 가운데 단 1곳도 레벨 0~2(기후 인식 부재~역량 구축) 단계에 머물지 않았다. 전체 54%(25개사)가 레벨 3(운영 의사결정 통합) 수준을 달성했고, 7%(3개사)는 레벨 4(전략적 평가), 39%(18개사)는 최고 수준인 레벨 5(전환계획 수립 및 실행)에 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레벨 5 달성 기업으로는 포스코(철강), SK이노베이션(석유·가스) 등이 대표적으로 포함됐다.
이는 아시아 평균 레벨 5 비율(14%), 일본(27%), 중국(0%)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였다. TPI 전체 평가 대상 기업 평균(16%)보다 27.4%p 높은 수준이다.
탄소 성과 측면에서도 한국 기업은 강점을 드러냈다. 파리협정 기준 한국 기업의 45%가 1.5℃ 정렬 수준을 달성했다. 이는 전체 평균(28%)과 아시아 평균(24%)을 모두 웃돈다. 다만, 18%는 자발적인 기후공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개선 과제로 지적됐다. 예를 들어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파리협종 목표에 미달했고, 종합해운기업인 팬오션은 아예 공시가 없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이 탄소 성과에서 1.5℃ 목표 정합 비율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반면, 관리 역량에서 레벨 4 이상 비율은 일본(35%)에 비해 낮아 전략적 평가 역량의 심화가 과제로 남아 있다.
안토니나 쉬어 TPI 센터 정책부국장은 “한국 기업들의 관리 역량과 탄소 성과 모두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의 역량 부족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구 중 중소기업 담당자들이 공시 관리와 탄소배출량 관리, 거버넌스 구축에 매우 어려워했다고 토론한 사실을 전했다. 쉬어 정책부국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후 전환 관리 역량 격차가 훨씬 크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숨은 메시지”라고 이야기했다.
“기업 탈탄소 의지 확인됐지만, 전환금융 허점 빠르게 메워야”
이번 기후주간에서 전환금융은 국가·기업 기후행동을 잇는 핵심 의제로 집중 조명됐다. 전환금융이란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집약 산업이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되는 금융을 말한다.
기업들의 탈탄소화 계획은 데이터로 확인됐지만, 녹색전환연구소는 이를 뒷받침할 전환금융 체계가 현재로서는 구조적으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표된 기업 데이터는 그 문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뒷받침한다.
첫째, ESG 공시 공백이 전환금융의 구조적 장벽이란 것이다. 이번 평가 대상 46개사 중 18%는 여전히 ESG 공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투자자가 기후 리스크를 평가하고 전환금융 자본을 배분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기업 단위 데이터가 전제돼야 한다. 스코프3 등을 포함한 ESG 공시 의무화가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백은 전환금융 시장 형성을 실질적으로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국내 ESG 공시 제도화를 위한 로드맵을 오는 4월에 확정하기로 한 상태다.
둘째, 고탄소 산업 분야와 전환금융 수요가 직접 맞닿아 있는 만큼 실질적 자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평가에서 포스코(철강), SK이노베이션(석유화학) 등 한국 기업 18곳이 레벨 5로 평가받았다. 철강·석유화학 등에속한 한국 기업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전환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면, 여기에는 금융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녹색금융 또는 전환금융의 형식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레벨 5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환계획이 있으므로, 실질적 자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셋째, 기업 전환계획의 근거가 되는 정부의 업종별 로드맵이 기업 전환계획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TPI 센터 분석에서 드러난 기업의 55%는 아직 배출 경로가 1.5℃ 목표 시라니오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기업 전환계획이 대한민국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기초한 ‘업종별 로드맵’에 근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NDC 자체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감축 수준에 미달하는 데다, 산업 부문 감축량은 전체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더해 업종별 로드맵은 단기 산업경쟁력과 고탄소 업종의 이해관계를 우선해 온 산업통상부가 작성한다. 느슨하게 설계된 업종별 로드맵이 기업 전환계획의 기준선으로 작동하는 한, 전환금융이 실질적인 1.5℃ 경로 달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넷째, 고배출 산업의 현재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진입 단계에서 기업의 전환의지 선언만으로도 전환금융 적격 인정이 가능하다. 외부 검증은 의무가 아닌 임의 사항이며, 공시는 금융회사에 대한 내부 보고에 한정돼 시장 공개 의무도 없다. 미이행 시에도 실질적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 역시 문제다. 거의 모든 단계에서 낮은 기준으로 설계된 상황이므로, 부실한 전환계획이 진입부터 사후 관리까지 어느 지점에서도 걸러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한국 전환금융은 탄소고착 위험이 심각한 상황이란 점을 지적했다. 전환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자금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처럼 탄소를 계속 배출하는 설비의 수명만 늘리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부터 2024년까지 7년간 발행된 발전 분야 녹색채권 중 LNG 발전이 약 36%(2조8000억원)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오선아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연구원은 한국의 전환금융 시스템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전환금융이 단기적 비용 부담 완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탄소 고착화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금융기관 모두의 엄격한 기준 적용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환워싱(transition washing)’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오 연구원의 말이다. 이는 고탄소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전환금융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경우를 말한다.
전환금융 활성화 위해선 명확한 정책 신호, 데이터, 공시 체계 필요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이 적격성·검증·공시·집행 전 단계에서 지나치게 관대한 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업종별 로드맵과 ESG 법정공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탄소 감축 없이 규제만 완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토니나 쉬어 TPI 센터 정책부국장은 “한국 기업들은 기후 전환 관리 역량 부문에서 아시아 내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업종별 계획 수립과 기업 전환계획 간의 연계를 체계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선아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연구원 역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업종별 로드맵 수립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일본 모두 업종별 로드맵에 맞춰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로드맵은 국가 계획을 실질적인 기후 행동으로 전환하고, 정책 입안자와 투자자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며 “로드맵이 없는 분야는 자체적인 전환경로를 수립할 수 있어 기후목표 자체에 맞지 않는 탈탄소 활동에 전환금융이 흘러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정수 ING 은행 APAC 지속가능솔루션그룹 이사는 투자자 관점에서 전환금융이 기존 녹색금융보다 더 까다로운 점을 언급했다. 그는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기업 자체 전환계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제3자 기관의 외부 검증과 사후 모니터링 체계, 투명한 공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철강·조선 등 탄소 집약 섹터에 자본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책 신호, 분류체계의 일관성,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재훈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 산업금융과 과장은 ESG 공시 로드맵과 관련해 이야기를 꺼냈다. 박 과장은 “항상 글로벌 기준 충족과 한국 내부 상황 고려,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생각하고 있다"며 "현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세부 계획을 다듬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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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진첩]



